삶의 의미 2017/04/06 04:46 by 지뇽뇽


빅터 프랭클의 책 <Man's search for meaning> 보고 있는데 유태인 수용소 생활 이야기보다도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의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풀려난 후 생각보다 사람들이 크게 반겨주지 않고 이제 고생은 끝일거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데에서 많은 이들이 삶의 목적을 잃고 좌절/분노 했다고. 어떤 이들은 그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는 데에 몰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어!'라고 했다는데 전형적인 victim entitlement(피해를 받은만큼 나는 편하게 살 자격이 있다며 이기심이 높아지는) 현상이네요. 


되려 수용소에서는 동료들이 서로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곤 했는데 나와보니 힘들었단 얘길 해도 '우리도 힘들었어'라는 반응뿐이고 가족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 '이러려고 그 고생을 했나' 같은 생각에 빠져들었다고 해요. 사실 전쟁 중인 마당에 수용소 밖의 생활도 아름답지만은 않았겠죠. 이렇게 과거의 고통을 전부 보상해줄 무엇 같은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뭐랄까 삶의 의미란 그때그때 거둬야지 나중에 몰아뒀다가 '뫄뫄하게 되면' 빵 터지겠지 라고 생각해선 안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도 환경에 따라 삶에 의미가 있어지거나 없어진다면 그 삶은 애초에 의미없는 삶이었을 거라며 삶의 의미란 그렇게 연약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환경에 영향을 받을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어떤 상황이 닥쳐오고 누가 뭐라 해도 내가 ㅁㅁ임에는 변함이 없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존감에도 가변적인 외적 기준보다 잘 변치 않고 비교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 기준'을 가지는 게 좋다는 발견들이나.. 또 자신에게 중요한 목적과 가치들을 생각해보는 '자기 확인'을 거치고 나면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라며 좌절에 좀 더 강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연구들과도 비슷한 맥락인 거 같아요. 내 안에 굳건하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것이죠. 


문득 생각해보니 한창 아팠을 때 여기에 무슨 의미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리기보다 그냥 그런 하루하루도 버린다는 생각 없이 나름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보내려고 했는데. 그래야 아픈걸 잊을 수도 있기도 했고요. 그 덕분인지 별로 피해의식이 남지 않은 거 같아요. 


뭔가 버리고 희생하는 시간으로 규정하면 그만큼 '보상'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길 거 같은데 이것도 다 나의 경험이고 그 안에서 더 나를 잘 발견할 수 있는 등 이것 역시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라는 책에 더 많은 페이지가 추가되고 더 내용이 풍부해지는 거랄까요. 그렇게 될 수 있게 책을 만드는 건 나의 몫이겠죠. 


저자 역시 '내가 여기서 풀려나기만 하면! 모든 게 좋아질거야!'라는 (어쩌면 비현실적인) 생각에 매달리기보다 수용소 생활에서도 조금은 소소한 즐거움들(풀을 관찰한다던가 석양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등)을 발견할 수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해요. 뭔가 경의를 표하고 싶네요.. 저자와 인간 둘 다에게. 


물론 피할 수 있는 고통과 특히 부조리한 일을 겪음으로써 생기는 고통은 가급적 피하자 주의입니다만(보통 사람들의 경우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것 못지 않게 망가지는 부분들도 크거든요..) 여전히 '그럴 수 없을 때' 또 필요한 성장통을 앓는 경우에 대해 생각해 놓는 건 좋겠죠. 




덧글

  • 주원 2017/04/06 09:53 # 답글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과는 다른 책인가요? 그 책은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다른 책이면 읽어보고싶네요.
  • 지뇽뇽 2017/04/06 12:44 #

    아마 같은 책일 거 같아요ㅎ
  • 루트 2017/04/06 15:57 # 답글

    이전에 어느 분에게서 "고생도 적당히 해야지, 오랫동안 고생한 놈들이 성공하고 나면 재수없어지더라." 라는 말을 들은 게 기억납니다. 순전 개인의 의견인 줄 알았는데, 아예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공식적인 증상이었군요;
  • 지뇽뇽 2017/04/07 05:29 #

    뭐 전부다 그러는 건 아닐테지만 특히 '억울한'일로 고생해서 피해의식이 생긴 경우 간혹 저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요
  • 토마토맛토익 2017/04/07 04:55 # 답글

    삶은....계란이죠
  • 지뇽뇽 2017/04/07 05:29 #

    헉..!!
  • 2017/04/08 21: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4/09 04: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Erin 2017/06/12 01:38 # 삭제 답글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나를 더 잘발견해서 나의 인생책에 몇줄 추가되고 나에게대해 더 잘알게 된다는 구절이 참 멋지네요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지뇽뇽 2017/07/03 10:35 #

    감사합니다 :)
  • Erin 2017/06/12 01:38 # 삭제 답글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나를 더 잘발견해서 나의 인생책에 몇줄 추가되고 나에게대해 더 잘알게 된다는 구절이 참 멋지네요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 피해의식 2017/08/16 11:39 # 삭제 답글

    피해의식이 제 삶의 가장 큰 적이었던 것 같아요.
    늘 지금의 시간은 미래의 행복을 위함이라며 지금의 행복을 억눌렀죠ㅠㅠ
    매일을 버린다 생각않고 최선을 다해 즐거워야 겠어요! 재밌는 블로그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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